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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이라면 누구나 모험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빼곡한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갑갑한 도심을 벗어나 주말이면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것이 현대인의 마음이다. 원할 때면 언제든 짐을 싸들고 어디로든 훌쩍 떠나버리는 것. 그런 모험에 대한 열망이 바로 레저 열풍이 부는 이유이며, 떠남의 동반자로서 손색 없다는 점이 SUV와 RV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이다.


하지만 SUV에도 엄연히 ‘클래스’가 있다. 비싸고 아니고를 떠나서, 작금의 많은 SUV들은 키높이 구두를 신고 공간을 넓힌 승용차에 불과하다. 어짜피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때때로의 모험을 위해 구입한 SUV로 시내를 달리며, 설령 떠나더라도 정말 험난한 산 속을 찾아가는 사람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도심형 SUV’라는 이율배반적인 말은 그렇게 대세가 됐다.


영국 출신의 SUV 명가, 랜드로버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반기를 든다. 창사 이래 SUV 만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온 만큼, 랜드로버의 모델들은 어떤 노면이든 돌파할 수 있는 정통 SUV를 지향한다. 특히 새로 출시된 가문의 막내,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작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동급 최고 수준의 오프로드 실력을 자랑하며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단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랜드로버 가문의 족보를 정리해 보자. 랜드로버의 설명에 따르면, 브랜드는 크게 3개의 필러(pillar)로 나뉜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는 별명처럼 귀족적인 럭셔리 라인업인 ‘레인지로버’, 실용적인 구조와 거침없는 오프로드 성능을 두루 갖춘 레저 라인업 ‘디스커버리’, 극한의 환경조차 가뿐히 돌파하며 랜드로버 오프로드 기술력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목적 라인업 ‘디펜더’ 등이 그것이다.


즉 온로드 주행에 촛점을 맞춘 레인지로버와 하드코어 오프로더를 지향하는 디펜더의 중간점에 위치한 것이 디스커버리고, 새로 출시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엔트리급 레저 SUV로써 포지셔닝된 것이다. 레인지로버 라인업에 비슷한 체급의 이보크가 존재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럭셔리를 다소 희생한 대신 훨씬 뛰어난 공간 활용도와 오프로드 주파 능력을 갖춰 차별화된다. 익스테리어 디자인은 철저히 랜드로버 패밀리 룩을 반영하고 있다. 상어 지느러미를 닮은 C 필러 등 지난 해 뉴욕에서 공개된 디스커버리 비전 컨셉트의 핵심적인 디자인 큐들을 이어받으면서도 컴팩트한 차체의 비례감을 해치지 않는다. 이보크 이래로 레인지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등에 입혀지고 있는 새 디자인은 랜드로버의 가파른 성장을 이끈 일등공신이다.


헤드라이트와 테일램프에는 독특한 나침반 형태의 LED 라이트가 적용됐는데, 자칫 비슷비슷해 보일 수 있는 패밀리 룩 속에서 디스커버리 스포츠만의 아이덴티티를 정립한 디테일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동그란 실루엣의 램프 디자인은 오프로더의 탐조등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또 귀여운 인상을 더해주기도 한다. 전장은 4,590mm인데, 동급 모델들과 비교해 보면 아우디 Q5나 BMW X3보다는 조금 작고 메르세데스-벤츠 GLK보다는 큰 정도다. 하지만 작은 차체에도 불구하고 휠베이스는 2,741mm에 달한다. 휠베이스가 길어지니 오버행이 짧아진다. 오버행이 짧다는 것은 오프로더에게 큰 장점인데, 특히 진입각과 탈출각 확보에 유리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진입각은 25도, 탈출각은 31도에 이른다.


내부는 실용적으로 단장했다. 화려했던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비교한다면 다소 투박하지만 기능에 충실하다. 기본형인 SE 트림은 마감재에도 다소 인색하지만, HSE 럭셔리 트림의 경우 가죽을 두른 대쉬보드와 16-스피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 등 랜드로버 특유의 고급스러움도 포기하지 않았다. 랜드로버 특유의 시프트 다이얼도 그대로다.

이보크와 비교되는 또 다른 강점 하나는 시야다. 운전할 때 탁 트인 시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고, 특히나 어떤 장애물이 있을 지 모르는 험로에서 시야는 중요한 요소다. 쿠페형 디자인을 위해 꽤 많은 시야를 포기해야 했던 이보크와 달리,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매끈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디스플레이는 양 옆에 세부 메뉴 별로 퀵 버튼을 배치해 메뉴를 들락거릴 필요 없이 직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최근 많은 신모델들이 모든 기능을 터치 스크린으로 집어넣어 직관성을 떨어뜨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 조작 버튼도 센터페시아 하단에 배치돼 있는데, 버튼을 누르는 즉시 모드가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모드를 선택한 뒤 조금 기다리면 변경되는 방식이다.

바디 사이즈가 작다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은 버리자.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2열 시트는 공간과 기능성 모두 뛰어나다. 긴 휠베이스 덕에 아우디 Q5보다 레그룸은 60mm나 길고, 1열보다 54mm 높은 시트 포지션으로 2열 탑승자도 개방감이 좋다. 또 2열 슬라이딩 및 리클라이닝 기능이 제공돼 장시간 탑승해도 불편함이 없겠다. 트렁크 공간은 2열 시트 포지션에 따라 479~829L의 적재용량을 갖추며, 2열 폴딩 시에는 1,698L로 늘어나 마찬가지로 바디 사이즈 대비 넓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에는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동일한 2.2L 직렬 4기통 터보 디젤 엔진이 탑재된다. 변속기 역시 2014년형 이보크부터 탑재된 ZF제 9속 자동변속기.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190마력, 42.8kg.m으로 동일하지만 온로드 주행 비중이 높은 이보크에 비해 디스커버리 스포츠 쪽이 변속기 기어비가 촘촘하게 세팅돼 있다. 최고 속도는 188km/h, 0-100km/h 가속 시간은 8.9초다. 메인 디쉬인 오프로드 주행에 앞서, 애피타이저로 온로드 달리기 실력을 확인해 봤다. 승용차보다 살짝 지상고가 높은 크로스오버들이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정통 SUV 답게 시트 포지션도 충분히 높다. 차고가 높은 오프로더라고 해서 온로드 달리기가 부족하리라는 편견은 버려도 좋다. 와인딩 로드에서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자세를 잘 잡고 내달린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오프로더라고 해서 하체가 무르고 엉성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프로더일 수록 급경사나 요철을 넘을 때도 안정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섬세한 하체 세팅이 필요하다. 디스커버리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라 코너링이든 고속주행이든 온로드형 SUV 못지 않은 주행 감각이 인상적이다. 2~3단 변속 충격이 심한 ZF 9단 변속기의 특징도 로직 개선을 통해 이보크보다 개선됐다. 전반적으로 일상 주행에서 불편함이 없는 기본기다.


온로드에서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빨리 험로를 내달리고 싶어 좀이 쑤셨다. 이런 차를 도로에서만 타는 건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시트 포지션을 높이고 터레인 리스폰스를 진흙 모드로 바꿨다. 터레인 리스폰스는 일반, 풀/자갈/눈, 진흙, 모래 등 4가지 모드를 제공한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할덱스 타입 전자식 상시 4륜구동으로 어떤 모드에서도 4륜구동 트랙션을 발휘하지만, 각 모드에 따라 변속기와 쓰로틀, 트랙션 컨트롤 등의 로직이 세세하게 변화한다. 오프로드 주행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불편하지 않다’는 것. 당연히 노면으로부터 엄청난 진동이 올라오지만, 그 중 많은 부분이 여과된다. 날 것의 느낌이 강한 지프의 모델들과는 사뭇 다른 감각이다. 자갈길에서 속도를 내도 불쾌함이 억제된다는 점은 프리미엄 SUV와 정통 오프로더의 사이에 있는 디스커버리 스포츠만의 독보적인 장점이다.


좀 더 험한 코스에 들어섰다. 아예 무릎 높이 물길에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최대도섭심도는 600mm로 경쟁자들 중 가장 깊은 곳에서도 주행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 정도 깊이의 물 속에 들어가면 차가 붕 뜨는 느낌에 아찔함까지 느껴지지만, 망설임 없이 가속하며 통과했다. 그 다음에는 바퀴가 붕 뜨는 요철을 넘어 가파른 언덕을 만났다. 최대 등판각도는 45도(100%)로, 이 역시 동급 중 최고 수준이다. 언덕을 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에 들어서면 내리막 속도 조절 장치(HDC, 힐 디센트 컨트롤)로 속도를 제어하며 내려간다. 이 기능은 후진으로 내리막을 내려갈 때도 작동한다.


그 밖에도 경사로 릴리즈 컨트롤(GRC), 롤링을 억제하는 자세제어장치(RSC) 등 디스커버리 스포츠에 최적화된 전자장비들이 아무리 난해한 험로에서도 그 주행능력을 십분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적잖은 경쟁자들도 비슷한 기능들을 갖추고는 있지만, 랜드로버만큼 그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차는 흔치 않다. 뛰어난 차체 강성과 오랫동안 다져진 SUV 제작 노하우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다만 저속 기어가 없는 점은 조금 아쉽다. 체급은 다르지만, 지프 체로키는 전자식 저속 기어도 갖추고 있다. 이 기능까지 갖췄다면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동급의 모든 라이벌을 오프로드에서 압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 컴팩트 SUV다.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같은 뼈대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지만 레이아웃과 주행 성능 면에서 뚜렷한 차별화를 이뤄냈다. 오롯한 아이덴티티와 경쟁력을 고루 갖췄다는 점은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최근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 수입 컴팩트 SUV 시장에서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가격은 SE 트림이 5,960만 원, HSE 럭셔리 트림이 6,660만 원으로 랜드로버 전 모델 중 가장 저렴하다. 스타일과 실용성, 오프로드 주행 실력이 두루두루 준수한데 가격도 착하니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을 수밖에. 독일 3사의 흔한 SUV들에 질린 1,000명이 넘는 소비자들이 이미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사전 계약했다.


지난 해 4,675대를 판매한 랜드로버는 디스커버리 스포츠를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까지 1,500억 원을 투자해 전시장과 서비스 센터도 확충한다. 독일 3사를 비롯한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랜드로버의 거침 없는 약진에 긴장해야 할 것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높은 완성도가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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